작업
개인전, 2021.04.20-2021.04.25, 사이아트스페이스
하나의 오브제를 구성하는 요소에는 시간, 돈, 물리적 속성 등이 있다. 그 시간은 작가가 순수하게 그 오브제를 제작하는 데 사용한 시간일 수도 있고, 오브제를 만들기 위해 생각한 시간이거나 공부한 시간, 작가가 지금까지 살아온 시간일 수 있다. 돈은 재료비, 제작 기간 동안의 생활비, 넓게는 작가 인생 전체의 생활비일 수 있겠다. 물리적 속성에는 재질, 크기, 무게, 또 그 오브제가 존속하는 시간이 있다. 이 요소들에 작가의 이름, 경력, 학력, 수요가 더해져 작품의 가치가 매겨진다. 작가가 배우고 경험한 것들, 들인 시간과 돈, 노력은 삶을 거쳐 작가의 생각이 되어 작업이라는 행위를 통해 작품으로 전환된다. 이 작품은 판매라는 행위를 통해 재화로 전환된다.
작품은 사고팔 수 있는데 과연 작업이라는 과정 자체도 측정해서 규격화를 거치면 사고팔 수 있을지 의문이 생겼다. 개념을 사고팔 수 있는가? 작품 안에 개념을 온전히 담을 수 있는가? 만약 그렇다면, 개념을 사고팔 수 있다는 것인가? 그리고 작품을 구매한다는 것은 그 작품 속의 개념을 사는 것일까, 개념을 샀다는 기분을 사는 것일까?
이런 의문을 해결하기 위해 감각적 요소들보다 개념이 더 중요한 개념미술에서 전부라고 할 수도 있는 ‘생각’을 기록했다. 생각한 내용을 작업노트에 적었고 생각한 시간을 기록했다. 이 전시의 유일한 작품인 오브제는 바로 그 생각한 시간을 기록한 스톱워치이다. 이 레디메이드 오브제를 만들기까지 들인 가치들의 아카이브가 화이트 큐브 형태의 담론 공간인 사이아트스페이스를 채운다. 이 오브제의 가치는 어떻게 계산할 수 있을까? 시장에서 판매된 가격이 이 오브제의 가치가 될까? 또는 그것을 만들기 위해 들인 시간이나 금액을 토대로 환산할 수 있을까? 이 아카이브, 그리고 오브제를 통해 개념 미술이란, 더 나아가 예술이란 무엇인지 질문을 던진다. 동시대 미술에서 마침내 물질적 속성에서 벗어나 살아 숨쉬게 된 개념은 전시 공간에서 어떤 전시 가치를 지닐까?
김지연, 2021
질문으로 환원된 예술작업의 과정과 그 결과물들에 대하여
김지연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자신의 작업 프로세스가 담긴 기록물과 함께 그 작업 결과물인 오브제 작업을 함께 전시하면서 개념 예술이 어떠한 전시가치, 그리고 어떠한 재화가치를 지닐 것인가에 대해 질문하는 작업을 보여준다. 전시장을 보면 전시장 중앙에 작가가 그의 작업을 하면서 작업에 대한 생각에 투여했었던 시간이 숫자로 표시된 스톱워치가 하나의 오브제 작업으로 제시되어 있는 것을 보게 된다. 그 나머지 공간에는 작가 자신의 신상에 관련한 기록물들이 액자에 걸려 있는 것을 볼 수 있고 작업에 대한 생각을 기록한 작업노트가 하나하나 낱장으로 나누어져 액자에 넣어진 상태로 전시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리고 그의 작업노트에서는 작가가 전시장 안에 오브제 작업과 함께 이와 같이 작업과정이 기록된 작업노트와 일종의 아카이빙 자체를 작업의 자리에 위치시키고 작업으로서 의미부여를 하는 것에 대한 여러 가지 생각이 기록을 읽을 수 있다. 이 일련의 작업 과정과 전시물들을 보면 작가는 ‘어떠한 경우, 어떠한 상황에서 무엇이 예술이 될 수 있는가’와 같은 문제, 즉 예술의 개념, 예술의 조건에 관한 문제로부터 작업에 투여한 것과 생산된 것, 그리고 액자와 화이트 전시공간 그리고 미술시장으로 이어지는 미술제도 문제에 이르기까지 예술 전반의 근본적 문제들에 대해 그의 작업과 전시를 통해 질문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어떻게 보면 문제 제기의 영역이 너무 넓게 확장된 것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작가가 제기하고 있는 문제들은 예술 전반에 걸친 여러 영역들과 복잡하게 관련되어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동시에 이 문제들이 작가에게는 예술가로서 작업을 한다는 것의 어떤 의미를 갖는가와 같은 본질적 문제를 판단하는데 있어서는 그 토대가 되는 중요한 문제였을 수 있을 것이기에 작가 자신은 이러한 문제와 연관된 작업을 함에 있어 그 여러 관련성들을 모두 거론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번 전시에서 흥미로운 것은 김지연 작가의 경우 이와 같은 예술 전반에 대한 고민을 어떠한 하나의 문제로 축약하기 보다는 이 여러 문제들 전반에 대해 자신이 생각하는 과정 자체를 작업 안으로 끌어들여 문제를 전시장 안으로 가져오고 있다는 점인 것 같다. 이러한 작업 방식은 작가가 예술에 대한 사유와 의문들에 대해 어떠한 결론이나 의견을 제시하기 보다는 관객들에게 질문의 형태로 제시하는 수준에서 상호작용의 양태로 가져가기 위한 하나의 방법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다시 말해 작가는 자신의 문제를 작가와 관객이 상호작용하며 대화하는 과정 자체로 변환하여 액자, 전시장 그리고 미술제도 안으로 수렴시키고자 하였던 것이다.
작가는 자신의 생각이 어디서 왔을까를 묻고 있지만 이는 그 출처가 타자일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해 그 가능성을 열어 놓고 대화하고자 하는 것으로 보이며 자신의 생각이 언어에 담길 수 있을까에 대해 질문하는 것 역시 언어라는 기표 안에 그 생각 모두가 담길 수 없음을 먼저 규정하기 보다는 질문으로 바꾸어 언어의 한계에 대해 토론하고자 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것은 예술의 가치, 그리고 미술작품을 재화로 환원 시킬 수 있는 가치의 문제를 다루는 방식에서도 마찬가지다. 개인의 이력 사항에서부터 영수증과 통장의 입출금 내역까지 자료로 다 드러내 보이면서 자신의 작업에 대한 가치를 흰 벽의 전시 공간에 액자 가운데 전시하는 가운데 감각의 대상으로 변환함으로써 예술적 사유와 논의의 대상이 되도록 바꿔내고 있는 것이다. 일련의 작업 과정들은 결국 예술적 사건으로 환원되어 전시장 가운데 위치하게 되면서 예술적 행위가 갖는 의미와 함께 작가 고유의 오리지널리티에 있어 그 경계와 한계의 문제에 대해서도 더욱 깊은 생각에 탐닉해 들어가지 않을 수 없도록 만들고 있는 것이다. 작가는 사실 어떠한 해답을 얻고자 하였던 것은 아니었던 것 같다. 오히려 이처럼 더욱 더 큰 의문 속에 몰입하도록 만들고자 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게 함으로써 작가는 예술 그리고 예술작품이라는 것은 그것의 개념 혹은 조건에 대해 관객과의 상호작용 속에서 ‘새로 쓰기’를 지속해 나갈 수 밖에 없을 것이라는 것에 대해 전시를 통해 보여주고자 하였던 것으로 읽혀진다.
이승훈 (미술비평), 2021